- 등록일2025.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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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제의 장이 모두 막을 내렸다. 올해로 46회를 맞은 생거진천문화축제와 함께 열린 진천평생학습축제의 장도 막을 내렸다.
다른 해와는 달리 하루가 늘어 4일간 펼쳐졌다. 향유하는 군민들에게 좋은 것인지, 아닌지 잘 모르겠지만 준비하는 관계자들은 녹초가 되어 뛰어다닌 것을 볼 수가 있었다.
호수 위에 우아하게 떠 있는 백조의 발놀림처럼 화려한 팡파르 뒤에는 늘 누군가의 재바른 움직임이 있었다. 몇 날 며칠 밤샘 노력을 아는지 모르는지.
대다수 주민은 며칠에 어떤 가수가 오는가 관심이 압도적으로 높아 다른 행사가 가릴 정도다.
예나 지금이나 잔칫상 물린 뒤에는 말도 많고 탈도 많은 법, 그 가운데서 묵묵히 진행되는 평생학습축제를 가까이서 지켜볼 기회가 됐다.
‘배우며 싱글! 나누며 벙글!’ 평생학습을 통해 싱글벙글 웃음꽃이 핀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백곡천 일대에서는 각종 체험부스가 운영되는 한편, 학습동아리 발표회와 다양한 전시마당을 펼쳐 볼거리, 즐길 거리를 제공했다.
그중에서 100여 명이 동시에 참여하는 ‘실버짱! 문해 골든벨’ 행사는 진천종합사회복지관을 뜨겁게 달구었다. 60대부터 90대 나이의 어르신들로 구성된 글샘학교 학생들이다.
글샘학교는 각 마을 경로당에서 이루어지는 어르신 문해학습자를 비롯해, 초등 학력인정과정과 중학 학력인정과정을 공부하는 어른 학생들이 다닌다.
중노년 학생들이 책가방을 둘러메고 도서관 강의실을 드나들며 기어이 졸업장을 따고야 말겠다는 의지로 불탄다.
200여 명의 학생 중 100여 명이 이번 평생학습축제에 ‘실버짱! 골든벨’을 외치며 지팡이를 짚고 도전장을 내민 것이다.
텔레비전에서 많이 보았던 장면, 고등학생이 모자를 삐뚜름히 쓰고 골든벨 문제 풀이하는 형식이다.
하나라도 더 맞추려는 어르신들 눈빛이 청소년 시절로 돌아간 듯 반짝인다.
틀리면 탄식과 함께 탈락 석 뒷자리로 돌아갔다가 패자부활전에선 환호성과 함께 살아 돌아와 의기양양하다. 아리송한 문제가 나오면 은근슬쩍 담당 선생님 쪽을 바라본다.
혹시나 무슨 힌트라도 얻을 수 있을까 곁눈질하는 모습이 영락없는 어린아이의 낯빛이다. 순진무구하다.
그것이 무엇이라고, 산전수전 다 겪은 어르신들의 기분을 들었다 놓았다 하는지…. 글을 배우고 있는 어른들의 골든벨 현장 분위기다.
이와 같은 어르신들을 응원하고자 후원해 주신 분들이 있다. 주식회사 ‘농경’과 지역 예식업체 ‘한울’이다. 흔쾌히 후원금을 내 주신 분들의 마음은 금액보다도 어르신들의 사기를 올리고 살맛 나게 하려는 응원의 메시지다.
장원하여 어사복을 입은 사람이나, 아쉽다고 입맛 쩍쩍 다시는 아차 2등 3등상, 지혜상, 슬기상으로 함께 무대에 선 이들이 상장과 함께 깃털처럼 가벼운 봉투를 흔드는 모습이 짠하다.
참가자 전원에게 주어지는 컵라면 1상자에 활짝 웃는 그들이 누구인가. 우리네 어머니, 할머니 아닌가.
우리의 삶을 반석 위에 올려놓고, 이제야 기억 가물가물해 가는 나이에 연필을 들고 공부한다. 배움에 대한 열망과 부끄러움이 혼재된 늦깎이 학생이다.
“어데 가노?” 이웃집 아지매가 묻는다. “저기, 어디 좀 가” 다음날 가방을 메고 학교에 가는데 또 묻는다. “오늘은 또 어디 가는데” “그냥, 조기 좀” “나도 거기 같이 가믄 안 되나?” 다음날부터 둘이 친구되어 학교에 다닌다.
글샘학교 학생들의 현주소이다. 맥주 거품 넘쳐나고, 웃음 출렁이는, 화려한 축제장 한켠에는 그림자처럼 살아온 이들의 삶의 흔적이 시로, 엽서로 수줍게 놓여 있었다.
10월 상달이다. 풍성한 결실의 달이다. 긴 추석 연휴가 끝나고 각자 일상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이 가을, 우리 부모님이 살아온 삶을 돌아봐 주고, 응원하고, 보듬을 수 있는 여유가 더 그립다.
내 고향, 우리 마을, 우리 사회라는 공동체 의식이 풍년가를 울리면 좋겠다.
출처 : 중부매일 - 충청권 대표 뉴스 플랫폼(https://www.jbnews.com)
